바다와 호수 이야기 / 크빈트 부흐홀츠
왜 진작 나는 나무로 변해 버리지 못했나. 흐르는 물이라도 될 수 있었을테다. 앞으로 앞으로만 흘러 나아가는. 혹은 차라리 한 개 돌이어도 좋았을 것을.

비어 있되 차갑지 않음. 친밀한 기다림. 뭔가가 돌아오기를. 대상이나 힘, 혹은 어떤 분명한 것. 그런 예감.

우리는 음향이 숨쉬는 궁전에 산다.

착각

어우러져 함께 한 소리를 내는것.그것은 한척의 배와같았다.연주하는 사람들은 배 안에서 안전하였다.끝도없는 바다.그들은 천천히 배를 저어 나아간다. 어우러져 함께 소리를낸다는것. 위험속의 안온함.

그 친구하고는 놀지 않는게 낫겠다는 거였다. 부모님이 보시기에 분명 어딘가 삐딱한 친구였다. 발명가라는 그 아이 아버지는 한번도 제대로 된 발명을 한 적이 없다고 발명특허나 돈같은 것하곤 거리가 먼 그런 사람들이니 가까이 할 것도 없단다. 하지만 내 생각은 전혀 달랐다 외줄을 타고서 달에 가 닿는 그의 수법을 한 번 본다면 누구든 놀란 입을 다물지못할텐데.

우리 눈에 보이는 건 모조리 이름이 붙여진다 희미하기 이를데없는 그런 별들도 마찬가지.별들은 궤도를 지키고 순례의 행로를 따라 빛이 일렁이는 별무더기 저 플레이아스 성단에 이른다. 다만 우리가 선 이곳, 나라속의 나라에서만 이름없는 일들이 일어날 뿐.

누가 내 자전거를 훔쳐갔는지 아무도 자수를 하지 않길래 모여서 한번 알아보기로 했다. 우리가 만난 건 마을 뒤 냇가, 풀밭위 막스와 파울, 모리츠, 야콥 그리고 펠릭스와 나, 모두 새로 분장을 했지. 그래도 자전거는 나오지 않던걸..


행복의 울타리 저 너머를 건너다보지 않기.그것이 바로 참 행복일지도…….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여자를 보면 겁을 내려고 했다.거울 앞에 한참을 서서 겁먹은 듯한 눈표정을 연습한 것임에 틀림없다. 어쨌든 여자들은 그를 놀라워했다.그러나 그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건지 여자들은 알 수가 없었다. 여자들은 차라리 그를 피하는 편이었다.겁을 주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암암리에 그렇게 하는게 그를 보호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여자들을 겁낼 거라는 소문도 있었다. 그런데 그 자신은 여자들이 자기만 보면 저항할 수도없이 빠져들고 만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다.

어느 날 좁은 길을 걷고 있었는데, 돌연 길 저편 끝에서 모르는 여자가 걸어오는 것 같았어. 왜 그랬을까. 분명 나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는데. 그런데 그녀는 가까워지지 않고 멀리에만 있었어. 그래서 나는 생각했지. 그녀는 다만 내가 지어낸 이미지일 뿐이구나. 하지만 그때에도 그녀는 쉬지 않고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어.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마냥 또 행복했지.

내가 나와 이야기를 나눌 때만 사용할,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내 심연의 언어와 알 수 없는 먼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나눌, 수많은 낯선 말, 말들을.
누군가 고백하듯 말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 속에서 사악한 인물 하나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 사람들 속에는 그도 포함돼 있었다. 그건 아무도 예기치 못한 발견이었는데, 사람들은 온 세상을 뒤져서라도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사악한 인물이 정말 존재하는지, 그러니까, 문학의 밖에서도 존재하는지를 알아보러 나설 참이라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 사악한 인물은 사람들이 현실 세계에서 찾아내길 원했던 자일 것이다. 혹은 극장에서 옆에 앉은 사람이 지금 무대 위에서 연기되고 있는 바로 그 어떤 인물과 다를 바가 없을 거라는 생각과 통했다.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시나? 우선 관객들을 모두 의심해 볼 만하지 않을까? 더 나아가서 우리 인간 모두에게 혐의가 있지 않을까? 허구는 실제와 같을 수가 없다고? 허구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 서로 다르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라이프니츠의 이론이다. 이 철학자의 관점은 아주 단순하게 요약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아주 같지는 않다. 뭔가는 항상 다르다. 거의 모든 게 그렇다. 이는 언어로 창조된 것은 결코 있어본 적도, 지금 있지도, 또 앞으로도 있을 수 없다라는 말이다. 언어 자체, 그리고 언어로 꾸며진 것은 무엇이든 이미 있었거나, 현재 있거나, 앞으로 있게 될 무엇과도 다르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이 말을 현실 속의 인물이 허구의 인물보다 훨씬 더 흉악할 거라는 얘기로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이야기를 지어내는 사람은 보다 덜 위험한 유형을 만들어내기 위해 허구 속에 등장하는 인물에게서 한 수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잠자는 숲속의 공주는 어디서 왔을까? 운좋은 한스와 은하가 된 별, 슈테른탈러는 어떻게 태어났을까? 개구리 왕자와 틸 오일렌슈피겔은? 이런 전설과 민담이 있었다는 사실은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모른다. 그들은 이야기 속에 머물렀기에 우리가 찾아 헤맬 필요가 없다. 내가 찾곤 하는 공원 나무에 이런 메모지가 붙어 있었다. < 슈테른탈러를 찾습니다. 어디에 가면 만날 수 있을까요? 가르쳐주세요. > 사설탐정을 고용한다고 해도 소용없는 일. 이 세상 어디에도 그들은 없다. 심리학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런 인물들은 저마다의 마음속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뻐해 다오. 나 이제 불행 속에서 침몰한다. 감히 넘볼 수 없던 기운이 내 안에서 마구 휘돌고 있다.

Ocean Gypsy / Renaissanc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