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land in My Soul
Island upon the Clouds

가방 하나 달랑 매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4월의 하루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런 여행을 꿈꾸는 이유는 추억의 장소를 회상하기 위함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확인하고픈 뜨거운 열망 때문입니다.
우리 삶 속에 존재하는 감성 여행은 보고 듣는 것 뿐만 아니라
우리 뇌 속 어딘가에 잠재되어 있는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상상은 삶에 대한 사유로 이어지곤 하죠.
상상력이란... 주의 깊게 보고 들음으로써
현존하는 다양한 이미지를 정신에 아로새겨 주는,
그러한 이미지의 파악을 위한 재능 및 감각
그리하여 찬란한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기억력이다.
- 헤겔
이 땅에서 살아가는 한 우리는 시간 속에 갇혀있는 유한한 존재지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탈출할 수 없는 고립된 섬(island)과도 같습니다.
그런 까닭에 자유로운 시간 여행을 꿈꾸는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삶과 시간의 의미를 사유 속에 담아낸 장 그르니에 처럼...

저마다 주어진 일생이 있다.
특히 그 일생이 동터 오르는 여명기에는
모든 것을 결정짓는 한 순간이 존재한다.
그 순간을 다시 찾아내기란 참으로 어렵다.
그것은 다른 수많은 순간들의 퇴적 속에 깊이 묻혀 있다.
장 그르니에의 산문집 <섬>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카뮈의 스승으로 더 잘 알려진 그르니에는 작가이자 철학자였으며
근대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성인 중 한 사람이었지요.
<섬>은 남프랑스 지중해의 정경을 서정적인 문체에 실어낸 것으로
바다에 쏟아져 내리는 찬란한 햇살 아래 둥실 떠있는 작은 섬들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이 담담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삶의 철학적 사유를 반짝이는 시적 영감에 담아낸 그르니에...
그는 특별한 것이 아닌 일상적인 소재를 통해 삶의 본질을 이야기 합니다.
개의 죽음, 튀니지 해변 어느 집의 테라스에 핀 꽃과
지중해 해안가의 무덤 같은 것이 그렇습니다.

나는 홀로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공상을 몇 번씩이나 했다.
그리하여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아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무엇보다도
나의 비밀을 고이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르니에와 같은 심정에 빠져 본 적이 있나요?
아는 이 하나 없는 낯선 도시를 그려보는 것!
그것은 현실로부터 도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막연한 기대감 속에
새로운 삶을 개척해보고 싶은 도전정신이 아닐까 싶네요.
어릴 적 갖고놀던 장난감 중에는 공(Ball)이 있습니다.
그르니에는 공조차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공의 매혹" 이란 글을 통해 어릴 적 추억을 회상하면서
生을 바라보는 사유와 관념을 담아 놓았습니다.

말 없이 어떤 풍경을 고즈넉이 바라보고만 있어도
욕망은 입을 다물어 버리게 된다.
문득 공의 자리에 충만이 들어앉는다.
내가 지나온 삶을 돌이켜 보면
그것은 다만 저 절묘한 순간들에 이르기 위한
노력이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 하늘에 떠있는 태양을 올려다 봅니다.
그러나 일순간 태양의 존재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뻥 뚫린 구멍으로 빛이 쏟아져 내린다는 환상에 빠져들곤 합니다.
태양에 가까이 다가가서 불타오르는 표면에 손을 대보지 않는 한
하늘에 올라 내 눈으로 직접 지구를 볼 수 없는 한
우주를 향해 끊임없는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의문은 상상력에서 비롯되며 하나의 작품으로 구현됩니다.
음악이나 미술을 비롯한 모든 예술 창작물은 위대한 상상력의 산물일겁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 또한 그렇습니다.

이 황량한 도시는 고독의 바다에 떠있는 섬과도 같습니다.
그곳에는 오직 "너"와 "나"만이 존재할 뿐
어느 누구도 그 영역을 침범할 수 없습니다.
거울 앞에 서면 그 속에 내가 아닌 당신의 모습이 보입니다.
당신을 통해 "나"라는 존재를 바라 볼 수 있는 건
내 어깨에 아름다운 상상의 날개를 달아준
당신이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