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의 음악창고☆

쟈클린의 눈물....

Happy-I 2004. 5. 26. 19:37









          나, 황진이고전으로 들었던 황진이는 뭍 사내들의 혼을 빼앗아간미기이며 기와 예에 능했던 기생으로서만 알고 있었다. 어느 날 우연히 교보에 들러 신간들을 뒤적이고 있었는데 주황색으로 단장한 "나 황진이"가 눈에 띄었다. "우리 역사에서 황진이만큼 널리 알려진 여성도 없지만 황진이만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여성도 없습니다." 라는 김탁환님의 말에 솔깃해 그 책을 사와서는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널리 알려진 바 대로 벽계수를 말에서 떨어뜨린 "청산리 벽계수야 쉬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 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이 노래는 황진이하면 대표적인 시조로 알려져 있지만 벽계수는 황진이의 손끝하나 잡아 보지 못하고 망신만 당하고 말았다는데 진랑의 노래소리에 뒤를 돌아보다가 (황진이의 노래소리에도 불구하고 무심코 지나가는 사내라면 대단한 성품일것이라 여겨 진랑이 스스로 만나기를 청했을것) 취적교를 지나기 전, 노래소리에 진랑을 돌아 보다가 말에서 떨어져 버렸고 그 꼴에 황진이는 " 이 사람은 명사가 아니라 단지 풍류장이로구나."하면서 뒤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가버렸다고 한다. 진백무에 능한 행수기생 새끼할머니(외할머니의 동생)로부터 무를 익히고 천문학습(별자리를 보는 법)을 익혔으며 풍류가야금을 제대로 타는 송도 유일의 현수였던 어머니진현금의 가야금과 거문고를 타는 솜씨, 또한 재아나 자공보다도 뛰어난 이야기 솜씨를 물려 받은 송도 기생 3세인 황진이가 당대 명기로서 뭍 남성의 가슴을 울렸던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겉모습 뿐이다. 권력이나 돈으로 여색만을 탐하는 풍류쟁이에겐 터럭 끝 하나 허락하지 않았으며 자신이 정한 잣대 (무와 기와 예에 능한 풍류명사)로 상대의 됨됨이를 파악하고 기와 예가 통하는 풍류명사하고 선택적으로 관계를 맺을만큼 성에 대하여 주관적이었으며 여성의 정체성을 확실히 깨닫고 그 깨달음에 따라 자신의 삶의 방식을 택하였던 것이다. 나이들면서 시력이 떨어지고 앞이 보이지 않게되는 장님 기생 모계를 가진 황진이의 인간적인 고뇌,성에 대하여 선택되어질 수 밖에 없던 기생이라는 신분과여성으로서의 성의 정체성에 대한 시대적인 혼란속에서 평생 동안 흠모하던 스승 서경덕을 만나게 되기까지 그의 가르침에 의해 황진이의 페미니즘과 미시사로 거듭나게 된 "역사의 문학화" "문학의 역사화"가 만나는 지점의 소설, 소설가 김탁환님은 "나 황진이"를 통해 세상를 향해 침뱉고 으르렁 거리며 욕하고 비웃으며 살던 황진이가 자조섞인 삶의 방식,그 모든 칼날을 그녀 자신의내안으로 들이 밀었을 때 치루어 낸 고통과 아픔을 적었던그녀의 시조를 바탕으로 깔고 또한 그 시대의 역사의 기록으로 재 조명하여 16세기 조선 시대 여성으로는 느껴지지 않을 만큼 당당한 "페미니스트 황진이"를 우리앞에 던져 주고 있다. "나, 황진이" 이제 그를 우리나라 페미니즘의 대표주자로 불러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교보에 나가 나혜석과 전혜린을 찾아보려는 생각을 하고 있다. 2003.10.24/외눈박이(황진이)






          Offenbach - Les larmes du Jacqueline (쟈클린의 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