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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리 더디 오십니까...이정하님 시모음

Happy-I 2005. 9. 4. 17:39

      사랑이라는 이름의 길 / 이정하 세상엔 수도 없이 많은 길이 있으나 늘 더듬거리며 가야하는 길이 있습니다. 눈부시고 괴로워서 눈을감고 가야 하는 길, 그 길이 바로 사랑이라는 이름의 통행로입니다. 그 길을 우리는 그대와 함게 가길 원하나 어느 순간 눈을 떠 보면 나혼자 힘없이 걸어가는 때가 있습니다. 쓸쓸한 뒷모습을 보이며 그대가 먼저 걸어가는 적도 있습니다. 그리하여 사랑이라는 이름의 길은 기쁨보다는 슬픔, 환희 보다는 고통, 만족 보다는 후회가 더 심한 형벌의 길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설사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가 어찌 사랑하지 않고 살 수 있겠습니까. 지금 당장은 고통스럽더라도 햇빛 따사로운 아늑한 길이 저 너머 펼쳐져 있는데 어찌 우리가 그 길을 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너에게 가는 것만으로도 / 이정하 처음에 어린새가 날갯짓을 할 때는 그 여린 파닥임이 무척 안쓰러웠다. 하지만 점점 날갯짓을 할수록 더 높은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삶도 꾸준히 나아가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풍성해 질 수 있다는 것일게다. 맨처음 너를 알았을 때 나는 알지못할 희열에 몸을 떨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곧 막막한 두려움을 느껴야 했다. 내가 사랑하고 간직하고 싶었던 것들은 항상 멀리 떠나갔으므로. 하지만 나는 너에게 간다. 이렇게 가다보면 너에게 당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내마음이 환희로 가득 차 오르는 건 너에게 가고 있다는 그 사실 때문이었다. 너에게 닿아서가 아니라 너를 생각하며 걸어가는 그자체가 내겐 더 없이 행복한 것이었으므로.
      고슴도치 사랑 / 이정하 서로 가슴을 주어라 그러나 소유하려고는 하지 말라. 소유하고자 하는 그 마음 때문에 고통이 생기나니. 추운 겨울날, 고슴도치 두 마리가 서로 사랑했네. 추위에 떠는 상대를 보다못해 자신의 온기만이라도 전해 주려던 그들은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상처만 생긴다는 것을 알았네. 안고 싶어도 안지 못했던 그들은 멀지도 않고 자신들의 몸에 난 가시에 다치지도 않을 적당한 거리에 함께 서 있었네. 비록 자신의 온기를 다 줄 수 없었어도 그들은 서로 행복했네. 행복할 수 있었네.
      새벽안개 / 이정하 새벽을 사랑하겠네. 그 신새벽에 피어오르는 안개를사랑 하겠네. 안개 속에 햇살이 그물망처럼 아름답게 피어 오르는 것을 사랑 하겠네. 내가 가장 그리워 하는 사람, 아니면 나를 가장 그리워 하는 사람이 안개가 되어 서성이는 창가, 그 창가를 사랑 하겠네. 나는 그렇게 새벽마다 수없이 그대를 떠나 보내는 연습을 하네. 내 속에 있는그대를 지우는, 혹은 그대 속에 있는 나를 지우는. 내가 나로 돌아올 수 있는 그 투명한 시간, 그 안타까운 슬픔을 사랑하겠네.
      사랑이 내 삶의... / 이정하 사랑이라는 것, 그것이 불빛 같은 것이었으면 좋겠네. 밤기차를 타고 멀리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따스한 위안을 줄 수 있는 불빛 같은 것. 그 불빛 하나로 깜깜한 밤을 지새는 사람에게 새벽 여명을 기다릴 수 있게 하는 한 줄기 소망 같은 것. 사랑이라는 것, 그것이 나무그늘 같은 것이었으면 좋겠네. 힘겨운 삶의 짐을 지고 가다 지친 사람들에게 잠시 쉬었다 갈 수 있게 하는 나무 그늘. 그 무성한 잎새 아래 땀을 식히다 멀리 바라보는 석양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랑이라는 것, 그것이 내 삶의 쉼표 같은 것이었다가 마침내 마지막 가는 길에 손 흔들어주는 만장(挽丈) 같은 것이었으면 좋겠네.
      살아 있기 때문에 / 이정하 흔들리고 아프고 외로운 것은 살아 있음의 특권이었네. 살아 있기 때문에 흔들리고, 살아 있기 때문에 아프고, 살아 있기 때문에 외로운 것. 오늘 내가 괴로워하는 이 시간은 어제 세상을 떠난 사람에겐 간절히 소망했던 내일. 지금 내가 비록 힘겹고 쓸쓸해도 살아 있음은 무한한 축복. 살아 있으므로 그대를 만날 수 있다는 소망 또한 가질 수 있네. 만약 지금 당신이 흔들리고 아프고 외롭다면, 아아 아직까지 내가 살아 있구나 느끼라. 그 느낌에 감사하라.
      저만치 와있는 이별 / 이정하 모든 것의 끝은 있나니, 끝이 없을 것 같은 강물도 바다도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들의 끝은 있나니, 또 마땅히 그래야 하느니 청춘도 그리움도 세월도 그리하여 우리의 삶 마저도... 내 사랑도 끝이 있다는 것을 나는 미처 깨닫지 못했네. 돌아보면 저만치 와 있는 이별, 비켜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아 나는 애써 외면하고자 했네. 내 사랑도 끝이 있다는 것은 결코 알고 싶지 않았네. 결코 알고 싶지 않았네.
      믿 음 / 이정하 그대가 지금 뒷모습을 보인다고 해도 언젠가는 돌아오리라는 것을 믿기에 나는 괜찮을 수 있네. 마시다가 남겨둔 차 한 잔 내 앞에 남아 있듯이 그대 또한 떠나봤자 마음은 여기 있다는 것을 알기에 난 아무렇지도 않게 미소 지을 수 있네. 그렇습니다, 우리... 떠나려는 사람은 강물에 띄워 보내자. 이 순간이야 한 없이 멀어지지만 굳이 슬퍼하지 말자. 언젠가는 강물이 비구름되어 우르르 우르르 비 오는 소리로 우리들 가슴을 적실 게 아닌가. 떠남이 있으면 덜아옴도 있는 법. 그대가 떠났다고 해서 실망하거나 노여워 하지 말고 외려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혀 그대가 올 때를 대비하는 게 더욱 급한 일. 영영 오지 않을 사람이라도 온다고 믿자. 그 믿음만으로도 우린 한세월 넉넉히 보낼수 있으리니.
      그를 위하여 내가 무엇을 / 이정하 참된 사랑이란 이기적이지 않네. 그 사랑은,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 자유롭게 만들어 주네.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을 때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있을 때 앞에 놓인 어려움들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네. 참돤 사랑이란 서로를 속박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가슴을 결속시켜주는 것이기에, 성장할 수 있도록, 변화할 수 있도록 그리하여 서로를 위해서라면 헤어짐이라도 기꺼이 감수할수 있는 용기를 주기에. 사랑한다고 말만 하지 말고 사랑받고 있다고 자만하지 말고 그를 위해 내가 무엇을 했고 또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기를...